朴元國
1899-08-14 ~ 1933-12-2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원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안남도 강동(`江東) 사람이다.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1919년 5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임정 군자금 모집원의 임명장을 받고 자금 조달에 전념하였다. 그는 권총 2정을 가지고 동지 김봉원(金鳳源) 등 5명과 함께 평양(平壤)으로 파견되었다. 여기서 실질적인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도내 대동군(大同郡), 강동군(江東郡) 등지에서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그때 그때마다 임시정부 재무총장 앞으로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밀고로 1921년 6월 미행하던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12월 15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소위 강도 및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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