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潤根
(187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윤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박윤근은 1911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0년 10월 23일부터 1921년 8월 22일까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 교통부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독립을 위해 국내와 연락 기구를 구축하였다. 임시정부 교통부는 산하에 국내와 교통,통신 연락을 담당하기 위해 교동국(交通局)을 설치하였는데 박원근은 그 실무를 주관한 것이다. 한편 1921년 3월 손정도(孫貞道) 목사의 주도하에 조직된 대한야수교진정회(大韓耶蘇敎陳情會)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의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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