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恩感
(1857) ~ 미상·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은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음력 10월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의 예수교 소속 여학교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조직은 1919년 음력 8월 평양(平壤)에서 윤찬복(尹燦福)·최복길(崔福吉)·정찬성(鄭燦誠) 등이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향촌 조직을 결성할 것을 권유받고, 이후 신자들 가운데서 1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여 결성한 것이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한국민회는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를 지원할 목적으로 평양에서 결성된 항일비밀결사였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각 군(郡)에는 군회(郡會), 면(面)에는 향촌회(鄕村會)를 두어 인근으로 조직을 확장해갔다.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에서는 결성 직후 각 두서(頭書)를 통해 임무를 분담하였으며, 회장은 윤찬복, 회계는 최복길과 정찬성이 맡아 활동하였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원조를 목적으로 각 회원으로부터 4원씩 징수하여 그 중 1원은 향촌회 비용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160원을 모았다. 그리고 1920년 음력 3월 23일 평양 경창리(景昌里)에 있는 성경학당(聖經學堂) 기숙사에서 한영신(韓永信)의 소개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온 차경신(車敬信)에게 이를 교부하였다. 박은감 역시 부인향촌회 회원으로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21년 1월 27일 동지들과 함께 순천경찰서(順川警察署)에 체포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8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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