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殷容
1880-03-06 ~ 1949-05-0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爲容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은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07년 전남 장성(長城)에서 기삼연 의병장(奇參衍 義兵將)의 의진(義陣)에 종군하였다고 하며 1919년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보내는 유림대표의 파리장서에 서명하였다. 동년 5월에는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로부터 독립운동자금 수합의 사명을 띠고 입국한 김 철(金澈)로부터 국민대회 취지서 선포문, 국민대회감수소 명의의 자금모금에 관한 고유서 및 전라남북도(全裸南北道) 의무금요구특파위원임명장(義務金要求特派委員任命狀)을 수교받은 후 전남 순천(順天)·곡성(谷城)·구례(求禮)·보성(寶城), 전북 남원(南原) 등지에서 4백여원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펴다가 붙잡혀 1920년 광주(光州)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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