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璋來
1899-01-03 ~ 1940-04-0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장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아산(牙山) 사람이다. 1919년 2월 말경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인산을 기하여 상경(上京)하였다가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직접 목격, 독립가(獨立歌) 등을 배우고 고향에 이 노래를 전파하기로 결심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향인 아산군 송악면(松岳面)은 인구가 적어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3월 10일 공주(公州)로 가서 영명학교(永明學校)·농업학교·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가를 가르치는 등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1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부분 취소되었으나 다시 상고하여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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