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在斗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재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부터 1909년까지 전남 장성(長城), 전북 부안(扶安) 등지에서 기삼연의진(奇參衍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장 기삼연은 1896년 2월 삼종질(三從姪) 기우만(奇宇萬)과 장성에서 창의하였다. 1907년 9월에는 영광(靈光) 수연산(隨緣山) 석수암(石水庵)에서 이석용(李錫庸) 등과 함께 창의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고, 무장(茂長)ㆍ법성포(法聖浦)ㆍ고창(高敞)ㆍ장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박재두는 1907년 음력 12월 25일 기삼연의진에 참여하여 장성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9월부터 10월 말까지 전개된 소위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이후에는 전북 흥덕군(興德郡) 일서면(一西面)과 이서면(二西面), 부안군 변산(邊山) 좌산내면(左山內面)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11월 20일 목포경찰서, 부안경비파견소(扶安警備派遣所), 줄포주재소(茁浦駐在所) 등으로 편성된 연합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2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을 받고 9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후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5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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