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在烈
1907-08-17 ~ 1988-03-0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재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진안(鎭安) 사람이다. 1929년 11월 서울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 3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으로 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일경에 붙잡히는 등 탄압을 받게 되자, 이것을 일제의 민족차별정책으로 규정하고 각지의 학생들과 동맹휴교 및 시위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탄압에 대항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29년 11월 16일 정윤희(鄭允熙)·이세원(李世遠) 등과 함께 약 1백여 명의 학생들을 규합하여 두 부대로 나누어 '학원의 독립', '만세, 피압박 민족' 등의 문구를 적은 기(旗)를 각각 선두에 들고 교문을 나서, 종로와 파고다공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익선동(益善洞)을 지나 창덕궁을 거쳐 봉익동(鳳翼洞)으로 각각 시위 행진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30년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달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9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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