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在英
미상 ~ 1907-11-0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재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경북 진보군(眞寶郡:현 청송군 진보면) 등지에서 신돌석(申乭石) 휘하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신돌석은 1906년 3월 13일(음) 경북 영해군(寧海郡) 남면(南面) 복평리(福坪里)(현 영덕군 축산면 부곡리)에서 창의하여 영양(英陽)·청송(靑松)·의성(義城)·봉화(奉化)·삼척(三陟)·정선(旌善)·강릉(江陵)·원주(原州) 등 경북·강원도 일대에서 태백산맥의 산악지대를 이용한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신돌석은 창의 초기인 동년 4월 29일 영양읍을 점령하고 진영을 둘로 나누어 한 부대는 일월산을 중심으로 청기(靑杞)·일월(日月) 등지에서 활동하고, 다른 부대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4월 30일 청송으로 출발하여 청송 관아를 공략·점령하였고, 동년 5월 하순경에는 진보군에서 우편소의 배달부(送夫)와 호송 헌병 2명을 사살하고 우편물을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11월 신돌석은 이강년의진과 연합해 활동하는 한편, 전국연합의병부대(全國聯合義兵部隊)의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하는 등 큰 세력을 떨치며 활동하였다. 박재영은 동년 11월 7일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에서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탈주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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