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금
생몰년 미상
이명·자·호 신정금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정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4일 3.1운동 소식이 하와이에 전해지자, 15일 황마리아의 소집으로 호놀룰루(湖港) 국민회 건물에서 공동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 하와이 각 지방 여성대표 대표자 41명과 함께 참석하여 독립운동 후원금 모집과 적십자대 업무, 재난동포 구제를 결의한 뒤 29일 대한부인구제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 대한부인구제회 대의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9월에는 호놀룰루에서 김보배 등의 발기로 영남부인회(嶺南婦人會)가 조직되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영남부인회는 후일 명칭을 영남부인실업동맹회로 개칭하고 저축 장려, 국산품 애용 등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1935년 6월 대한부인구제회에 호놀룰루 대표로 참석하여 중앙부 총무로 선임된 데 이어 1936년 4월에도 총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보다 앞서 1936년 2월에는 영남부인실업동맹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37년 1월에는 한인부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3월 박금우와 함께 부인구제회 중앙부장 후보로 선정되었으나 최종 적으로 총무로 선정되었다. 총무로 선출된 지 한 달 후인 4월 중앙부와 호놀룰루지방회가 연합하여 부인구제회 창립기념식을 개최하자, 「전진방침」이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10월에는 부인구제회 중앙부와 호놀룰루지방회가 임시정부 봉대(奉戴)와 독립운동 절대 후원을 결의하고 혈성금(血誠金) 수전위원(收錢委員)을 선출할 때, 수전위원으로 뽑혔다. 1943년 3월 부인구제회 창립기념식에서 구제회 역사를 강연하였고, 8월에는 한미승전(韓美勝戰) 후원금 수봉위원(收捧委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4년 1월 호놀룰루지방 대표로 대한부인구제회 대표회에 참석하였고, 3월 대한부인구제회 중앙부 총무로 선임되었으며, 10월에는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 통상회에서 특연금 수봉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2월에는 1945년도 대한부인구제회 중앙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45년 3월 전시 한국 동포 구제를 위해 임시위원을 선정할 때, 수금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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