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同
(1923-12-01) ~ 1942-06-06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정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1년 7월경부터 일본 도쿄(東京)에서 중일전쟁 이후 일본의 패전을 전망하고 김수병(金壽秉)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힘쓰다 같은 해 12월경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1941년 7월경 일본 도쿄 하곡구(下谷區) 이장정(二長町) 159번지 자신의 하숙집 등에서 김수병을 여러 차례 만나 "중일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이행하여 독일 등 추축국(樞軸國)은 결국 패전에 빠질 것이다"라고 전망하였다. 그리고 이에 "조선청년은 이 기회에 조선 동포가 일본제국주의 통치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 독립을 완수하기 위하여 단결을 공고히 하고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김수병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동지 규합에 힘쓰다 같은 해 12월 12일 도쿄 경시청(警視廳)에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경시청은 박정동을 취조한 후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하였으나, 1942년 6월 박정동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자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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