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文
(187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정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6월 충남 부여군(夫餘郡)ㆍ정산군(定山郡) 등지에서 박일복의진(朴一福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면서 의병운동은 무장력을 갖추고 더욱 강화되었다. 이 시기 충남 지역에서는 맹달섭(孟達燮)ㆍ박일복 의병장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상업에 종사하고 있던 평민 의병장 박일복은 1907년 11월경 남포군(藍浦郡)에서 일본인 밀정으로 파악된 홍산군아(鴻山郡衙) 사령(使令)을 처단하였으며, 1908년 6월경에는 수십 명의 무리를 이끌고 부여군ㆍ정산군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08년 9월 4일 임천군(林川郡)에서 체포되었다. 박정문은 잡화상으로 1908년 5월 8일 부여군 방생면(方生面) 외라마리(外蘿馬里)에서 박일복의진에 들어가 부여군ㆍ정산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박일복 휘하의 의병 16명과 함께 1908년 6월 20~21일 부여군 구룡리(九龍里)에서 체재하고, 그 후 정산군 미륵당리(彌勒堂里), 방생면(方生面) 황산리(黃山里)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8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종신 징역을 받고 공소하였다. 같은 해 10월 9일 원판결 취소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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