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貞守
1901-03-08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정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부산 좌천동(左川洞)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부산에 전해지자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朱敬愛)는 부산상업학교 학생들과 연락을 취하는 한편, 동료 교사와 고등과 학생들에게 알려 거사를 독려하였다. 박정수는 김난줄(金蘭茁)ㆍ김응수(金應守)ㆍ송명진(宋明進) 등 고등과 학생 10명과 함께 기숙사에서 태극기 50개를 만들었다. 3월 31일 박정수는 교사 주경애ㆍ박시연(朴時淵)의 인솔 아래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숙사 문을 뛰쳐나왔다. 여학생들이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군중 수백 명이 호응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박정수는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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