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濟國
(188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제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중국 길림성 장백현 팔도구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1921년 태 극단 임강현 본부 총무로 활동하였으며, 1925년 길림성 장백현·임강현에서 정 의부 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29~30일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 팔도구(八道溝) 제7정목학 교(正蒙學校)에서 김관계(金冠戒) 등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21년 태극단(太極團) 임강현(臨江縣) 본부에서 총무로 활동하였다. 태극단은 1919년 장백현·임강현을 중심으로 조인관(趙仁官)을 비롯하여 정삼승(鄭森 承)·김동준(金東俊) 등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태극단은 의용대를 편성하 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일제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였다. 또한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광복단·흥업단(興業團) 등과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1921년 11월 노령 흑하(黑河)에서 조선독립단 연합총회가 개최되자, 태극단 대표로 참석하였다. 이 연합총회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대한독립광정단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1925년 1월 다시 광정단을 비롯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길림주민회·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7개 단체가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자, 정의부 부원으로 장백현· 임강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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