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鍾丸
1911-09-16 ~ 미상·현대
이명·자·호 朴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종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30년경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사회주의 사상에 감화됐다. 이후 1930년 12월 6일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남해청년동맹 창립대회에 참가해 간부를 맡았다. 1933년 5월에는 비밀결사 남해공산주의자전위동맹을 조직해 남해군 각 면에 농민반을 설치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했다. 또한 이 단체의 교양부 및 출판부 책임자로 활동했다. 같은 해 8월 1일 반전 데이(Day)를 맞아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위해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격문 십 수 부를 등사판을 사용해서 제작했다. 박종환은 1932년 1월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남해청년동맹 간부로 활동하다가 불온한 노래를 불러 ‘치안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류 10일을 선고받았다. 이후 1933년 8월에 재차 체포돼 1935년 10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옥고를 치르고 1936년 11월 20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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