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鍾喜
1889-05-09 ~ 1929-08-1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종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청양군의 시위는 1919년 4월 5일부터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중 가장 큰 시위는 5일부터 3일간 계속된 정산면(定山面) 만세시위였다. 특히 이 시위는 목면 안심리(安心里)에 거주하는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 권흥규(權興圭)가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함으로써 더욱 거세졌다. 이처럼 5일부터 전개된 정산시장과 목면의 치열한 시위는 권흥규를 비롯한 유림계의 운동이었다. 목면의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박종희는 1919년 4월 23일 청양헌병분견소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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