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周大
1924-04-01 ~ 2000-02-08·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주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40년 4월 일본 명고옥(名古屋) 미장(尾張)중학교에 재학하고 있을 때 이평산(李平山)의 지령에 따라 동경에 유학중이던 학생 20여 명과 문학청년동맹(文學靑年同盟)을 조직하고 수필지인 <금강산(金剛山)〉을 등사 제작하여 동지들에게 배포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42년 9월 대판(大阪) 차화(此花)상업학교의 야간부에 3학년으로 편입한 뒤 동지들을 규합하여 수필지인〈금강산(金剛山)〉을 재발행하여 활동하다가 귀국하였으나 1944년 일경에게 연행되어 강제로 징병입영서를 받고 일본군 함흥43부대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일본군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1944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직할 군대인 광복군(光復軍)이 중경(重慶)에 있음을 전해 듣고 광복군에 입대하기 위하여 동지 9명과 완전무장을 하고 일군을 탈출하여 중국군 제5유격대에서 활동하다가 1945년 3월 의춘(宜春)에서 중국군 제9전구에 편입되었다. 1945년 4월 1일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1지대(第1支隊) 제3구대(第3區隊)에 배속되어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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