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重鎭
1910-10-05 ~ 1949-09-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중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29년 3월 광주사범학교(光州師範學校)에 재학중 독서회(讀書會)에 가입하고,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1930년 3월에 퇴학을 당함과 동시에 붙잡혔다. 이에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금고(禁錮) 4월형,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31년 4월에는 전남담양노동조합(全南潭陽勞動組合)의 상임서기로 있으면서 조합원의 임금인상투쟁을 지도하였으며, 동년 10월 일본인 미곡상인의 조작된 노임인하 술책에 항거하다가 붙잡혀 1931년 11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받았다가 1931년 12월 9일 1930년에 받았던 금고 4월 5년간의 집행유예 판결이 취소되고 금고 4월의 실형을 가중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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