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辰來
미상 ~ 1921-02-0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진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내무부 소관으로 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 조직이자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부(聯通府)를 각 도·군·면에 설치할 것을 골자로 하는 '연통제(聯通制)'를 공포하였다. 이 연통부는 국내에서 임시정부의 명령과 공문 전달, 군인·군속(軍屬)의 징모(徵募)와 군수물자의 수송, 구국재정단원(救國財政團員)의 모집, 군자금의 수합과 납부, 공채 발매, 독립운동에 필요한 정보통신 연락 등의 임무 수행을 주목적으로 하였다.이에 따라 그는 수년 간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직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와의 연락 및 군자금 모집 임무에 진력하던 중, 1921년 2월 7일 동군 운시면(雲時面) 상동(上洞)에서 일경에게 붙잡힐 위기에 놓이자, 권총을 발사하며 항전하다가 일경의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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