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晋成
1878-12-12 ~ 1925-10-0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晋先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진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平洞) 편항(鞭巷)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을 사전에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미 3월 15일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박재식(朴載植)·이강욱(李康郁)등 7명의 동지와 함께 편항 시장내의 공동 타작장( 落場)에 모여서 장날인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그 진행방법으로써 만약 일본 경찰이 제지하면 편항주재소까지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각각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케하기로 하고, 자신은 유곡란(柳谷蘭)·박재식과 함께 편항 부근의 주민을 담당하였다. 3월 21일 오후 2시경 500여명의 독립만세시위 군중이 편항시장에 모이자, 그는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이때 주재소에서 2명의 일본경찰이 출동하여 유연성을 강제로 체포해가자 계획대로 편항주재소로 달려가 그곳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이 위협하기 위하여 권총을 한발 발사하자 시위군중의 분노가 폭발하여 박진성 등의 지휘아래 투석과 곤봉을 이용하여 주재소와 순사의 숙사를 파괴하고 공문서도 파기하였다. 계속 여세를 몰아 임동면 사무소로 행진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문서와 비품을 파기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19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건물 파괴·가택침입·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6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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