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贊道
1893-11-22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朴基善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찬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2년 중국 임강현(臨江縣) 두도구(頭道構)에서 한교민단(韓僑民團) 경호원(警護員)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31년에는 평북 강계군(江界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교민단은 1921년 2월경 관전현(寬甸縣) 백채지(白菜地)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우근(金祐根)ㆍ양승우(楊承雨) 등이 조직하였다. 임원으로는 감독관 김우근, 총무부감 김사진(金仕振), 재무부감 김일준(金一俊), 경무부감 여순근(呂淳根), 고문 유응하(劉應夏), 벽창의용대장(碧昌義勇隊長) 양승우 등으로 알려져 있다. 박찬도는 1922년 7월 한교민단 경호원으로 임강현 두도구에서 납세고지서를 배부하고, 이주 조선인 장영수(張永洙) 등으로부터 군자금 60원을 모집하여 동단의 경호장 김병기(金炳起)에게 전달하였다. 1923년 3월경에는 임강현 조타구(弔打溝)에서 맹성록(孟聖綠) 등과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23년 12월 1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죄 및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9월 10일 출옥하였다. 1931년 2월 7일에는 평북 강계군 문옥면(文玉面) 별오참(別午站) 부호 한승준(韓承俊)의 집에서 군자금과 엽총 1자루를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31년 4월 17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주거침입죄ㆍ강도죄ㆍ상인죄(傷人罪)로 징역 7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8년 6월 4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