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昌浩
(189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창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7월경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연정면(蓮井面)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은율군수(殷栗郡守)를 처단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일행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중국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 근거지를 둔 대한독립단은 각지에 지단을 설치했다. 관전현(寬甸縣)에 설치된 대한독립단 지단의 단원 변춘식(邊春植)ㆍ고두환(高斗煥)ㆍ이명서(李明瑞)ㆍ민양기(閔良基)ㆍ이지표(李芝杓)ㆍ박중서(朴重緖)ㆍ박기수(朴基洙)ㆍ주의환(朱義煥)ㆍ원사현(元士賢) 등은 1920년 음력 6월경 황해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운동반대자ㆍ자금모집방해자를 처단할 목적으로 입국하였다. 관전현 지단원들은 1920년 음력 7월 2일에 친일파로 지목된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의로 처단하였다. 박창호는 1920년 음력 7월 6일부터 8일까지 황해도 송화군 연정면 방양리(方陽里) 자신의 집에서 지단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범인은닉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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