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春範
1898-11-0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춘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중국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 위치한 천주교 계통의 사립학교인 교향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항일사상을 품고 조국 독립을 희망하였다. 1920년 4월 10일 연임백(延任百)·함태영(咸泰永) 등의 권유에 따라 연길현 용지사(勇智社) 대교동(大敎洞)에 위치한 사립 교경학교(敎卿學校)에 모여 학생광복단을 조직하였다. 이때 학생광복단의 내무부장(內務部長)에 선임되었다. 국민의무금(國民義務金)의 명목으로 군자금 의연(義捐)을 촉구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군자금 47원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0년 5월 10일 간도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공갈 및 공갈미수’를 이유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7월 12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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