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致根
(187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치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江原道)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7일 상서면 봉오리(峰吾里)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구장 이창선(李昌善)을 비롯한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 등은 만세운동을 추진할 것을 논의하면서 거사일을 장날인 28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각자 분담하여 봉오리,다목리(多木里),파포리(巴浦里)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28일 이른 아침, 박치근은 이창선을 비롯한 주민 30여 명과 함께 봉오리와 파포리 부근 산에 모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동면 면사무소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이 행진을 시작으로 상서면 만세운동은 약 2,000명이 참여할 만큼 확산되었으나, 일본 시위대의 급습으로 현장에서 4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이 부상당하였다. 이 일로 붙잡힌 박치근은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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