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八文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팔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9일과 10일 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성곡동(城谷洞)에서 장영조(張永駣)가 주도한 3.1운동에 참여했다. 장영조는 전국 각지에서 조선인이 집결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불러 시위운동을 시작하였다는 소식과 인접 군(郡)인 선산군(善山郡)에서 만세를 부른 사실을 들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을 모아 함께 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4월 9일 장영조는 마을 주민들에게 “동네에서 만세를 부르기로 했다, 참가하라”고 권유했다. 여기에 박팔문을 비롯한 마을 주민 장준식(張俊植)・장병규(張柄圭)・장재식(張在植) 등 다수가 찬성했다. 그리하여 오후 8시경 성곡동에서 박팔문 등 주민 3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0일 밤에도 마을에서 주민들과 독립만세를 불렀다. 박팔문은 2일간의 만세운동 참가로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3일 (왜관헌병분견소에) 구류되었다. 같은 해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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