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泌祚
(1872) ~ 1961-02-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필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8월경 경북 군위(軍威)에서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에 가입하여, 겉으로 종교 활동을 표방하며 독립운동에 진력하기로 결의하였다. 흠치교는 교주 밑에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 밑에 6인조, 6인조 밑에 각 12인조, 12인조 밑에 각 8인조, 8인조 밑에 각 15인조 등을 두는 조직 체계를 구성하였다. 이 같은 조직 구성으로 흠치교는 경북 일대에서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다. 이들은 1924년 갑자(甲子)해에 흠치교의 힘에 의해 조선이 독립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금모집 및 교도증대에 힘을 쏟았는데, 박필조는 8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박필조는 이 일로 인해 1921년 4월 22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 항소하여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면소(免訴) 처분을 받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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