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學實
(187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학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경북 일대에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시연은 강원ㆍ경북ㆍ충북 일대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합류를 요청하는 격서를 보내자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삼척 방면에서 이강년을 만났다. 그러나 당시 삼남토벌대장인 친일파 박두일(朴斗日, 朴斗榮)의 계략으로 본진이 깨지자, 울진십이령(蔚珍十二嶺)에서 박두일을 사살한 뒤 영양(英陽)ㆍ청송(靑松)ㆍ안동(安東)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과 교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박학실은 유시연의진에 참여한 후 1908년 음력 5월 23일 밤 천복룡(千福龍) 외 의병 수 명과 함께 경북 안동군 임남면(臨南面) 지례동(知禮洞)ㆍ부곡동(釜谷洞)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11월 2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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