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弘善
1879-01-20 ~ 1919-03-10·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홍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 단천(端川)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 인이다. 1919년 3월 10일 단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3일에 서울로부터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자, 천도교인들이 주동이 되어 천도교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순도기념일(殉道紀念日)인 3월 10일을 이용하여 전개하기로 계획되었다. 3월 10일 오전 11시 각면에서 천도교도 3백여명이 교당에 모여 먼저 교조순도기념식을 거행하고, 이어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선두로 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도 시위군중과 함께 천도교당을 출발하여 용현리(龍峴里)와 하서리(下西里)를 거쳐 헌병대로 행진하였는데, 시위군중은 점차 늘어 1천여명으로 증가하였다. 헌병대에 도착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신랄하게 규탄하며 만세시위를 벌이자,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때 서봉화(徐鳳化)가 앞으로 나서며 헌병대장에게 우리나라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자, 헌병대장이 태극기를 든 그의 어깨를 군도로 내리쳤다. 그러나 서봉화가 가슴을 풀어헤치며 계속 대들자, 결국 그의 배를 찔러 죽였다. 이같은 만행을 목격한 그는 격노한 시위군중과 함께 헌병대를 습격하다가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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