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和烈
1898-03-04 ~ 1936-11-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화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창원군(昌原郡) 창원읍(昌原邑) 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두 차례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하였다. 1차 시위는 1919년 3월 23일 창원읍 장날이었다. 이날 오후 2시 20분경 6,000~7,000여 명의 장꾼이 모여들자, 주동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군중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 함성이 진동하였다. 그러나 이 시위는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31명이 붙잡히면서 해산되었다. 이때 체포를 면한 일부 주동자들은 4월 2일 장날을 2차 거사일로 정하고 비밀리 연락을 취하였다. 거사 당일 청년 15명은 오후 3시경 많은 장꾼들이 몰려들자,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에 상인들도 호응하여 철시(撤市)하고 합세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본 경찰은 마산으로부터 증원 병력을 얻어 총칼을 휘두르며 난타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힌 박화열은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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