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興來
(187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흥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구례(求禮)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면사무소에 독립선언서를 게시하는 활동을 하였다. 천도교인 박흥래는 1919년 3월 2일 전남 구례군 용방면(龍方面) 용사리(龍寺里) 자신의 집에서 7명의 교인과 함께 예배를 보고 있었다. 이때 전북 남원군 남원읍내 천도교구장 유태호(柳泰浩)의 대리인 김종웅(金鐘雄)이 찾아와 1919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孫秉熙) 외 32명의 명의로 된 선언서와 공약 3장을 보여 주며 '본 선언서는 조선독립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밤중에 가만히 관공서의 게시판 등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붙이라'고 하달하였다. 이에 박흥래는 강정택과 함께 3월 2일 밤 구례군 광의면과 용방면 면사무소 게시판에 독립선언서와 공약 3장을 몰래 게시하다가 붙잡혔다. 이 일로 박흥래는 1919년 4월 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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