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喜烈
1920-12-04 ~ 1945-01-1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松原俊卿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희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42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동지들과 함께 항일결사 백두회(白頭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32년 일본 효고현(兵庫縣) 이타미(伊丹)에 있는 형의 집에 함께 살면서 1938년 3월 이타미시립소학교(伊丹市立小學校)를 졸업하였다. 1940년 2월 오사카 부립(府立) 기타노제2중학교(北野第二中學校) 야간부에 입학하고 직공과 인부 등으로 일하며 고학하였다. 이즈음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에 대해 반감을 품던 중, 동급생 정승한(鄭承漢) 등을 만나 교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1942년 4월 오사카 히가시요도가와쿠(東淀川區)에서 정승한을 만나 한국 독립을 위해 단체 조직과 동지 규합에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듣고 찬동하였다. 같은 해 5월 초 다시 정승환 등과 같은 장소에서 모임을 갖고 항일비밀결사 백두회를 조직하였다. 백두회는 기타노제2중학교 3ㆍ4학년인 한인 학생을 회원으로 하여 독립에 필요한 자질 함양과 한국 사정 연구를 목적으로 하였다. 같은 해 7월 중순 한국 독립을 위한 구체적 방침을 협의하였고, 10월 중순에는 백두회 회원 명부 제작을 의결하였으며, 12월 하순에는 회원 간 상호 연락, 단결 강화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44년 2월 26일 체포되었다. 1944년 7월 7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1월 10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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