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熙化
(188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박희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5월 평안남도 영원군(寧遠郡)에서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5월 평안남도 영원군 대흥면(大興面) 인처리(仁處里)에 소재한 자신의 집에서 이순호(李淳浩)의 권유에 의하여,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낼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독립청년단에 가입하였다. 이순호는 같은 달 인처리에 거주하는 이성호(李成浩)를 자신의 집에서, 동년 9월 2일에는 함경남 도 장진군(長津郡) 구읍면(舊邑面) 신흥리(新興里) 거주의 기독교 신자 김종규 (金宗奎)의 집에서 동 신흥리 거주의 김종규·이지용(李志用)·임문순(林文淳)· 안태욱(安泰旭)·김사갑(金士甲)·김낙선(金洛善) 등을 조선독립청년단에 가입시 켰다. 박희화는 동년 5월 중순에 현금 10원과 동년 8월에는 김종규에게서 받은 10원 을 이순호에게 전달하였다. 1921년 1월 7일 구류되어 1921년 2월 9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 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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