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擎日
(186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방경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861년경 서울에서 태어나 1905년 5월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가서 에네켄농장에서 일했다. 1909년 5월 멕시코 한인들이 국민회 메리다지방회를 결성할 당시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1911년 3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구제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베라크루즈주 남쪽에 있는 오학기나(Oaxaqueno)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오학기나로 이주한 한인들은 1911년 12월 17일 오학기나지방회를 신설했는데, 방경일은 지방회의 학무원으로 임명되었다. 1915년 5월 유카탄으로 돌아와 메리다지방회의 서기 겸 구제원으로 임명되었고, 1917년 대의원, 1918년도 평의원 등에 선임되었다. 1919년 6월 캄베체지방 경찰소장, 같은 해 8월 베라크루스지방 경찰소 서기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3월 쿠바로 이주하여 1922년 10월 마탄사스지방회 학무원으로 임명되었으며, 1923년 8월 카르데나스지방 3.1기념식 절차위원으로 행사를 준비하였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마탄사스지방회 서기, 1937년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멕시코·쿠바지역에서 한인 2세들을 위한 민족교육 활동을 펼쳤다. 1915년 메리다지방회 산하 산낙타(Sanahtah) 경찰소에서 설립한 국어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1917년 1월 메리다지방회에서 직접 관할하는 해동학교(海東學校)의 감독을 맡았다. 1925년에는 쿠바 카르데나스 신성국어학교 교사, 1928~1930년 마탄사스 민성국어학교 교사로 다년간 근무했다. 1917년 이후 의무금, 인구세, 3.1적립금, 광주학생운동 동정금 등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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