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基元
1874-10-1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방기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1년 3월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1년 3월경 이수문(李守文)의 권유로 입단금(入團金) 1원을 내고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1920년 음력 5월에 평남 대동군(大同郡)에서 박응률(朴應律)을 단장으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 등의 연합회로, 평남 총무 김봉규(金琫圭)가 박응규 등과 함께 설립하였다. 김봉규는 1920년 2월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서 결성된 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 직할의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사령장(司令長) 조맹선(趙孟善)의 부하였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는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친일분자를 처단하며, 결사대를 조직해 무력투쟁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방기원이 활동했던 평남 맹산(孟山)ㆍ영원(寧遠)ㆍ덕천(德川) 등지의 조직도 1920년 11월 김봉규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군자금 모집, 일제 경찰 처단, 면사무소 공격과 무기 탈취 등을 수행하였다. 또 본부에 인쇄기 3대와 주자(鑄字) 12,000여 개를 사들여 유고문(諭告文), 군자금 모집용 납입고지서 영수증, 입단지원서 등을 인쇄하였다. 1921년 6월 20, 21일 방기원 등 83명이 맹산경찰서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2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1922년 3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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