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致京
(186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방치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방치경은 1909년 8월 충북 영동에서 조석우(趙錫祐)를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유력한 의병장들의 전사와 일본 군경의 탄압으로 의병활동이 점차 위축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 운봉 출신의 조석우는 1909년 8월 23일 충북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영국사(寧國寺)에서 장군선(張君先)·조덕장(趙德章)·권덕원(權德元) 등과 모임을 갖고 삼남대장(三南大將)이라 하여 총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장군선·조덕장·권덕원은 부장(副將)이 되고, 방치경 등은 병졸(兵卒)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본인을 처단하고 철도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격문을 띄우는 한편, 장정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양남면(陽南面) 일대에서 군사를 모집하면서 거사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방치경은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형(流刑) 2년에 처해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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