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孝俊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방효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덕천군(德川郡)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1921년 평남 맹산군(孟山郡) 맹산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5일 천도교인 현성재(玄聖才)는 기독교와 연락하여 양측 교인 4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포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방효준은 김사진(金泗振)과 함께 군중들에게 조선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한 뒤, 군중을 이끌고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행진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방효준은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1년 8월 평남 맹산군에서 천도교 전도사로 재직 중이던 방효준은 원남면(元南面)에서 수십 명의 천도교인들에게 11월 워싱턴에서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가 개최될 터이니 회의 개최시기에 맞춰 만세운동을 전개하자고 선동하였다. 이 일로 방효준은 다시 체포되었으나, 1922년 3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방면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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