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奉誌
1894-09-20 ~ 1949-05-1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배봉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27년 3월 경남 통영지역의 도평의원(道評議員)으로 친일행각을 벌인 김기정(金淇正)을 응징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박봉삼(朴奉杉) 등 11명은 김기정이 평의회 석상에서 한국인 교육의 불필요성과 한국어 통역철폐 등을 주장하자, 시민대회를 열고 이 사실을 일반시민에게 알렸다. 그리고 이들은 그에게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하였다. 그러자 김기정이 오히려 이들을 고소하여, 1927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 검사의 강제처분으로 모두 통영경찰서에 구류당하였다. 5월 13일 구류 인사 중 단식하다가 사망소문이 퍼져, 이날 오전 9시경 그 가족 연고자 및 이에 호응한 수백의 군중들이 경찰서와 김기정 집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하였다. 그때 배봉지는 김동근 등과 함께 김기정 집으로 쳐들어가 그를 구타·응징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군중과 일경이 충돌하여 경관이 중상을 입고, 서장과 순사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붙잡혀,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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