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羲稷
1883-01-19 ~ 1969-08-20·일제강점기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 등이 3월 18일 영해읍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가던 중, 이곳에서도 3월 19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배희직은 거사에 적극 참가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9일 200여 명의 시위군중이 모인 가운데 배희직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군중을 주도하며 주재소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행진도중에 시위군중은 더욱 늘어나 400여 명에 달했다. 주재소에 도착한 시위군중은, 배희직 등의 주도하에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오후 7시 경 자진 해산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방해·상해·건조물손괴(建造物損壞)·기물손괴(器物損壞)·공문서훼기·보안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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