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敬玉
1887-08-3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경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7월 하순 북예배당(北禮拜堂) 부속 여자소학당 선생 등과 회동 후 하교하면서 김영로(金永潞)로부터 같은 해 8월 20일 선천역을 통과할 예정인 미국 의원단에 독립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문제를 김석창(金錫昌)·백시찬(白時瓚)·안병균(安秉均) 등과 함께 논의하였다. 그러나 국경 경비가 강화되어 거사에 사용할 무기의 반입이 늦어져,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에 실행하고자 했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1920년 9월 1일 박치의(朴治毅)·이학필(李學弼) 등이 일본 천황의 생일인 소위 ‘천장절일(天長節日)’을 이용해 선천군청에 폭발물을 투탄하고, ‘적국의 관리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살포하기로 계획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12월 20일 평양지방법원 선천지청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폭발물 취체벌칙(爆發物 取締罰則) 위반’ 등을 이유로 징역 8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지만,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5년 8월 14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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