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南圭
1888-04-2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남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구(大邱) 사람이다. 1915년 12월 무렵까지 노령(露領) 및 중국 본토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연락책의 임무를 맡고 귀국하던 중 체포되어 미결수로 1년 동안 투옥되었다. 1919년 2월 10일에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경상도 대표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4월에는 임시 의정원에서 각도별 지역별 의원을 선출한 결과 경상도 의원으로 피임되어 활동하였다. 의정원 회의에서는 구급의연금의 모집, 인두세의 징수, 내외에 공채모집 등의 방안을 가결하였다. 임시의정원은 초창기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5차 회기 중에는 결석위원심사위원회가 조직되고, 결석위원에 대한 처리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예산결산 상임위원에 피임되어 활약하였다. 이 제5차 의정원회의에서부터 임시의정원의 면모를 갖춘 본격적인 의정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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