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德鉉
1900-01-2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덕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조선을 독립시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같은 해 11월 중국 요녕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오학수(吳學洙)·지응진(池應晉) 등이 조직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했다. 1920년 6월 지응진이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고, 만주로 돌아와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사령관 이탁(李鐸)으로부터 폭탄과 권총, 폭탄제조용 원료 등을 받아 안동현(安東縣) 이륭양행(怡隆洋行) 내 교통사무국으로 운반하고자 하였다. 이때 김봉성(金鳳聖)·최봉린(崔奉獜)과 함께 폭탄과 권총, 폭탄제조용 원료 화물을 안동현으로 운반하였다. 1920년 7월 9일 안동현 교통사무국 연와출장소에서 최봉린·김봉성과 함께 관전현(寬甸縣)의 오동진(吳東振)에게 무기를 옮기던 중, 대한청년단연합회의 무기 운반 사실을 포착한 일본 안동영사관경찰서의 습격을 받아 오학수·지응진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9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금고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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