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三圭
미상 ~ 1920-06-07·조선
이명·자·호 白三奎, 溫堂(號), 白溫(號)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삼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태천(泰川) 사람이다.1985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일제에 시해되자 유인석(柳麟錫)과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남만으로 망명한 후, 조병준(趙秉準)·전덕원(全德元) 등과 함께 환인현(桓仁縣) 등지에서 농무계(農務契)·향약계(鄕約契) 등을 조직하여 동포들의 정착 자치생활을 도모하는 한편 독립운동의 항구적인 기반을 닦기에 노력하였다.1919년에는 박장호(朴長浩)·조병준·전덕원 등과 함께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 부총재로서 무력을 정비하여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위하여 분투하였다.그리고 만주 각 현과 국내에 독립단 지단을 설치하여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일제의 주구기관인 보민회(保民會), 일민단(日民團), 강립단(强立團)원 등을 주살하고, 국내진입을 도모하는 등 맹렬한 활동을 지휘하였다. 그는 복벽파(復酸派)로서 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 등과 함께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의 영수였으나 독립운동상에서는 모든 독립운동자들과 함께 행동을 통일하여 활동하였다.1920년 5월에 그는 일본군 판본(板本)등이 관전현(寬甸縣) 향로봉(香爐峯)의 우리 청년단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청산구(靑山溝)에 갔다가 부하 김덕신(金德新)과 함께 잡혀 환인현(桓仁縣) 사첨자(沙尖子)에서 총살당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8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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