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英武
1893-09-07 ~ 1971-06-21·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白榮武, 白世彬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영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신의주(新義州) 사람이다. 1913년 1월 만주로 건너가 해외혁명동지회(海外革命同志會)를 조직하여 연락책임자로서 동지 맹포순(孟浦淳)·이천민(李天民) 등과 활약하였다. 1916년 5월 만주 통화현(通化縣)에서 문명준(文明俊)·임석호(任錫浩) 등 동지와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총무로 활약하였던 그는 1922년 2월에는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3년 경기도 경찰부의 경부(警部) 황 옥(黃鈺)과 함께 다량의 폭탄을 가져다가 동년 5월 중순을 기하여 일제 관서에 대한 폭파와 주구배 처단을 하기로 하였으나 일행중 김재진(金在震)이 일제에게 매수되어 모든 사실을 밀고함으로 말미암아 붙잡혀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1924년 4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5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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