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元心
1896-07-13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白同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원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1년 10월 중국 요령성(遼寧省) 금천현(金川縣)에서 국민부(國民府) 제3중대장 심학산(沈學山)의 권유에 따라 동부(同府)에 가입하였으며, 제3중대원으로 일본 관헌에 대한 정찰(偵察) 업무에 종사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정의부(正義府)ㆍ신민부(新民府)ㆍ참의부(參議府)의 대표가 모여 결성하였으며, 요령성 신빈현(新賓縣) 흥경(興京)에 본부를 두었다. 1929년 5월 28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민사ㆍ경제ㆍ외교ㆍ군사ㆍ교육ㆍ법무ㆍ교통위원회와 중앙호위대 및 8개 중대의 군대를 조직하였다. 또한 1929년 12월 이당치국(以黨治國), 이당공작(以黨工作)의 원칙에 입각해 국민부를 이끌기 위한 유일당(唯一黨)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하였으며, 군사조직으로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을 두었다. 백원심은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 일제의 독립운동세력에 대한 검거선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932년 2월 23일 해룡영사분관(海龍領事分館)에 체포되었다. 1933년 1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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