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仁燮
(188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백인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충북 옥천군(沃川郡)에서 석주사의진(石主事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백인섭은 1908년 7월 26일 의병장 석주사의 지휘에 따라 총기를 휴대하고 옥천군 장사리(長沙里) 정학관(鄭學官)의 집에서 금 100환을 모집하고, 27일에는 옥천군 도호리(陶湖里) 김 모의 집에서 금 10환을 모집하였다. 28일에는 옥천군 산수동(山水洞) 양 모의 집에서 금 20환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12월 2일 은사령(恩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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