卞敬助
미상 ~ 1908-04-25·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경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경주(慶州)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륵약(乙巳勒約)」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국권강탈 행위인 을사륵약은 일제가 그간 은폐해 왔던 한국 식민지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언론활동·종교활동·교육활동·학술활동 등을 통한 국민 계몽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이었다. 특히 의병운동은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변경조는 이같은 시기에 의병운동에 투신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4월 17일 경북 경주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일본군 경주수비대 제12중대 소속의 이른바 '의병토벌대'와 격전을 벌이던 중 붙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월 25일 박대중(朴大重)·유원수(柳元守) 등 동료 의병들과 합세하여 적진에서 탈출 투쟁을 전개하던 중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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