卞奇學
1909-02-19 ~ (1974-11-29)·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기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30년 4월 서울로 올라와 사립 고학당(苦學堂)에서 수학하면서 동료 학우들과 함께 공산주의 등 신사상을 공부하고 토론하였다. 1931년 고학당이 폐쇄되자 이후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독학을 했고, 1934년 12월부터 서울 창신동(昌信洞)에 있는 광성학원 교사가 되어 한국인 아동에게 민족의식과 신사상을 교육하였다. 1934년 6월부터 정재철(鄭載轍) 등과 함께 서울지역 공장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변기학은 1934년 6월경부터 1935년 8월경까지 1년여 동안 여러 차례 정재철을 비롯해 손술석(孫戌釋)·김만기(金萬基)·김복금(金福金) 등과 회합하며, 각 공장 내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혁명적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반제·반전투쟁을 전개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5년 8월 말에서 9월 초 무렵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 9월 12일 검찰로 송치되어, 10월 22일 권우성(權又成)·정재철·최이칠(崔利七)·정용봉(鄭龍鳳) 등 4인과 함께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6년 12월 28일 예심이 종결되었고, 1937년 7월 10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 150일 통산)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사흘 후인 7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8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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