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永弘
1876-06-25 ~ 1943-04-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영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2일 경북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동(上金谷洞)에서는 권석인(權錫寅)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권석인은 광무황제의 인산(因山)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가 3·1운동의 상황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권석호(權錫虎)와 밀의하여 3월 12일 예천읍 장날에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부하는 한편 동지 규합을 서둘렀다. 그러나 삼엄한 경찰의 감시와 경계로 거사 계획이 탐지되어 중지하였다. 타오르는 울분을 억누르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4월 2일 각 동리에 긴급 연락을 하여 주민들을 상금곡동으로 모이도록 하였다. 오후 10시경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그와 동지들은 군중 앞에서 힘차게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일제히 여기에 호응하여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군중은 면사무소 앞길을 따라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때 일경이 급거 출동하여 총검으로 군중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변영홍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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