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允學
(189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윤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3년 중국 요령성(遼寧省)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 검찰관(檢察官)으로 활동했으며, 1929년 4월 이후 유하현(柳河縣)에서 정의부(正義府) 경비대장(警備隊長)으로 같은 해 7월에는 국민부(國民府) 소속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3년 2월 27일 관전현(寬甸縣)에 근거를 둔 대한독립의군부에 입대해 환인현 일대 검찰관이 되어 의무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9년 4월 25일에는 유하현 일대 정의부 제3구 집행위원장이었던 서삼민(徐三民)에 의해 경비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국민부에 들어가 금천현(金川縣) 황니하자(黃泥河子)에서 교육비 및 의무금 등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9년 4월 조직된 국민부는 1920년 중반 이후 중국 만주를 분할하여 활동하던 참의부(參議府)ㆍ정의부ㆍ신민부(新民府) 등 3부의 일부가 통합된 군정위원회의 성격을 가진 독립운동단체였다. 1932년 1월 15일 일본 재봉천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3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新義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