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麟鳳
1901-02-18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인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黃海道) 봉산군(鳳山郡)에서 사립창성소학교(私立昌成小學校)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1920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지원을 위한 비밀결사인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을 조직했다. 단장에 손재흥(孫再興), 부단장에 김청풍(金淸風)이 선출되고 그가 서기로 선임되었다. 조선독립청년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통국(交通局) 사리원지국(沙里院支局)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중국 상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뿐만 아니라 경성교통사무국(京城交通事務局)과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공보』, 『독립신문』과 잡지 『신한청년』을 사리원 일대에 배포하여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고 독립사상을 각성시켰다. 더불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증서를 매각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들이 보낸 자금은 임시정부에서『독립신문』인쇄비, 무기 구입비, 임시정부 요원의 급료 등으로 사용되었다. 조선독립청년단 요원들은 황해도의 각지에서 독립운동 자금 1천 4백여원을 모금하여 임시정부 요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변인봉도 1920년 8월 9일에 체포되어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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