邊海龍
(1883) ~ 1908-09-22·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변해룡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변해룡은 1907년 의병에 참여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탄약 구입을 위해 중국에 왕래하던 중 1908년 9월 14일 홍원군(洪原郡) 대방막동(大方幕洞)에서 일본 제3순사대에 붙잡혀 북청(北靑)경찰서에 구금되어 취조를 받던 중 9월 21일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북청읍 동문밖에서 붙잡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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